⋅ 제작년도 : B.C. 206 - A.D. 220
⋅ 규격(cm) : 다양
⋅ 소장년도 : 2006년
⋅ 소장점수 : 총 114점
명기(明器)란 ‘신명(神明)의 기(器)’라는 뜻으로 사자(死者)를 신명이라고 하며, 사자를 예송(禮送)할 때의 옷을 명의(明衣)라 하고 그 그릇을 명기라고 부른다.
중국에서는 고대부터 사후 세계에 사용할 생활용구를 사자(死者)와 함께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다. 이 물품은 장사(葬事)를 지낼 때 죽은 자와 함께 묻은 부장품으로 주로 흙으로 구워 만들었다. 죽은 자가 생전에 사용한 기구, 주변인물, 동물 등을 모조한 것이었다. 한대(漢代)에는 명기 제작이 더욱 성행하여 크고 작은 인물의 토우를 비롯하여 개, 돼지, 닭 등의 동물, 가옥, 창, 우물, 솥, 가구, 식기 등의 모형이 제작되었다. 이 중에서 가옥 형태의 토기종류를 가형명기(家形明器)라고 부른다.
가형명기를 비롯한 명기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(B.C. 722 - 221)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였다. 무덤에 산사람을 묻던 순장풍습이 점차 모형으로 바뀌면서 한(漢, B.C. 206 - A.D. 220)나라 때부터는 명기들이 다량으로 생산되었다.
가형명기는 죽은 이에게 평소 안식하던 집을 만들어 줌으로써 사자가 내세에서도 현세와 같이 안락하게 살기를 바라는 명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. 또한 그 크기와 종류는 매우 다양하여 축사, 시골가옥, 화장실, 창고, 각종주택, 중층누각, 물위의 망루 등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, 소성방법도 유약을 입히지 않은 소박한 것과 녹유를 입혀 아름다운 색을 띄고 있는 것 등 다양하다. 기와나 전돌, 타일 등이 건축의 재료로서 건축도자 영역에 들어간다면 가형명기는 그 자체가 완전한 하나의 예술품으로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.
비록 산자가 아닌 죽은 자를 위한 집이지만 가형명기는 당대를 살았던 고대인들의 주거문화나 생활양식을 그대로 담고 있기에 그 시대의 건축양식과 건축물의 구조 등을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.
이러한 명기(明器) 제작은 송(宋) ·원(元)나라를 거쳐 명(明) ·청(淸)시대까지 계속되었다. 명기를 끼워 묻는 풍습은 한국에도 전래되어, 조선시대에는 사람, 말, 항아리 등의 명기를 만들었으나 조선 인조 이후에는 그 실례를 찾아 볼 수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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